몸을 움직여 사는 사람은 쓰임새가 헤픈 반면에,
돈을 움직여 사는 사람은 쓰임새가 여물다고 합니다.
그러나 헤프다는 사실 속에는 헤플 수 밖에 없는
대단히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.
첫째 노동에 대한 신뢰입니다.
일해서 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.
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간 관계입니다.
노동은 대개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어서
인간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입니다.
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.
몸 움직여 사는 사람이 헤프다는 것은
이를테면 구두가 발보다 조금 크다는
합리적인 필요 그 자체일 뿐
결코 인격적 결함이라 할 수 없습니다.
헤프다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신뢰하고,
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에서
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.
- 처음처럼(신영복, 랜덤하우스) p.137 -
가수 김장훈씨가 지난 9년동안 30억원을 기부했다고 했을 때
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5000만원짜리 전세라는 말을 들었을 때
나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다.
가수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데
버는 족족 기부해버리면
나중에 뭐먹고 살려고 그러는지 걱정 아닌 걱정이 들기도 했다.
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.
"일해서 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."
그리고 김장훈씨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.
"...가수를 하다 수명이 끝나면 포장마차를 해서 먹고 살면 된다는 각오를 하게됐다."